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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어스 맨



A SERIOUS MAN

아이돌,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라디오 DJ, 그리고 소설집 <산하엽 : 흘러간, 놓아준 것들>을 발간한 ‘쓰는 남자’ 종현. 그만의 세상에 아주 잠깐 들어가본 후 적어본 쇼트 스토리.


비온 다음 날이었다. 몸에 걸친 외투의 두께가 전날에 비해 곱절로 부풀어 오를 만큼 스산한 물기를 머금었다. 누군가를 대기 현상에 비유할 수 있다면 그날은 딱 ‘종현’스러운 날씨에 가까웠다. 이런 날을 좋아한다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조금 우울감이 있는 짙은 파란색의 날씨”


대낮에도 한밤처럼 어둑한 지하 3층 스튜디오 안으로 호리호리한 남자가 베트멍 후디를 푹 뒤집어쓴 채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작은 체구를 뒤덮고 있던 검은 옷을 걷어젖히면 조막만 한 얼굴과 실루엣만으로는 예측 불가한 다부진 팔 근육이 드러난다. 곧 링에 오를 권투선수 같은 태세. 그가 한 달 뒤 오를 곳은 무대다. 12월 서울(3,4일)과 부산(17,18일)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얼마 전 그의 트위터엔 “15세 공연이에요. 왜.그.럴.까.”라는, 묘한 궁금증을 품게 하는 짧은 글이 올라왔다. 그 멘션 바로 위엔 “콘서트 영상 촬영 전부 종료! 퍼포먼스 준비를 더 알차게”라며 근육질의 상반신 사진을 첨부했다. “체지방은 빠지고 몸무게는 예전보다 늘었어요. 운동을 열심히 해서 텐션이 한가득 올라온 상태랄까요? 공연이 끝났을 때 관객분들도 저처럼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로 나가셨으면 좋겠어요. ‘이럴 수가’라고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웃음)” 판타지적인 캐릭터, 화려한 무대 장치, 섹슈얼한 요소 등 예측 불가한 일들이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벌어질 예정이다.


종현은 자타공인 워커홀릭이다. 촬영 당일의 스케줄을 속사포로 읊어보자면 전날 일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촬영장으로 바로 날아왔고, 몇 시간 못 잔 상태로 스파크를 일으키며 일곱 벌의 의상과 밀착되어 ‘포즈 왕자’라는 별명과 함께 스태프들의 박수세례를 받았다. 사진가가 촬영 BGM으로 선곡한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흥얼거리거나 리듬 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러다가도 정적 속에 놓인 영상 카메라 앞에서 크리스마스 인사를 전할 때는 수줍은 소년처럼 입을 가리며 부끄러워했다. 뭐지 이 남자? “무대 위에서만 공격적이고 강렬한 캐릭터가 뚜렷하게 나오는 편이고 일상생활에서는 훨씬 더 정적으로 살아요. 극과 극인 것 같아요. 워커홀릭처럼 파고드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반면에 제 안에는 염세적인 에너지도 있어요. 하루에도 그 두 모습이 왔다갔다하는 것 같아요.”


아마도 전자의 모습이 불꽃처럼 잠깐 발현되는 것이라면 후자인 고요하고 정적인 시간은 그에게 훨씬 길고 중요한 듯하다. 그에겐 생각할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니까. “기린이 왜 기린인지 아세요?” 삼십 평생 내 이름 석 자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지 않은 나는 “목이 길어서?”라는 주입식 대답밖엔 할 수 없었다.(정답은 우리가 아는 그 기린은 전설 속에 존재하던 또 다른 동물 기린을 닮아 기린이 된 것이란다.) 당분간 맥주 캔에 그려진 그 전설의 동물을 보면 피식 웃음이 새어나올 것 같다.[각주:1] “저 이런 거 너무 좋아해요.(웃음) 어떤 단어가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궁금증이 많아요. 이름이라는 게 사람들 간의 약속이랑 같은 거잖아요? 단어의 근본을 찾아가는 과정이 재밌더라고요.” 사람들에게 종현이란 존재는 어디서 출발해 지금의 이름이 되었을까?


아이돌,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라디오 DJ, 그리고 소설집 <산하엽 : 흘러간, 놓아준 것들>을 발간한 ‘쓰는 남자’ 종현. 소신에 의해 고등학교를 과감히 그만두고 진로를 일찌감치 스스로 발견하여 음악학교에 진학했으며 샤이니의 멤버로서 그리고 종현이란 독립적 뮤지션으로 활동해온 지금까지의 행보엔 ‘쓰는 행위’가 있어왔다. 종현은 스토리텔링이 습관처럼 몸에 밴 사람처럼 보였다. 제목 짓기━작사━작곡 순으로 이뤄지는 곡 작업은 주로 휴대폰의 메모장에서 처음 일어난다. 거기에 가장 최근에 뭘 적었냐는 질문에 “지금 한번 볼까요?”라며 버튼을 누르더니 언젠가 노래로 들을 수 있을지 모를 가사를 담담하게 읽어주었다. “‘씀’이라는 앱이 있어요. 매일 매일 글감을 하나씩 주는데 거기에 맞춰 글을 써서 올리면 사람들끼리 공유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잠꼬대, 헛수고처럼 단어와 문장이 랜덤으로 던져져요. 요즘 여기서 어떤 컨셉트를 잡고 계속 쓰고 있는 글이 있어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어 항상 그 마음으로 글을 쓰는 거죠.” 그에게 곡을 쓸 수 있게끔 영감을 주는 건 텍스트뿐만 아니라 소리의 힘도 있다. 김예림, 아이유, 손담비, 이하이 등 평소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그들의 곡 작업과 함께 때때로 프로듀서의 역할도 겸했으며 이에 대해 대중과 평단이란 양날로부터 호평을 끌어냈다. 요즘 종현이 즐겨 듣는 음악은 우효라는 인디 뮤지션. “읽는 것과 듣는 것을 동시에 못해요. 음악이 귀에 들어오면 일단 따라 부르다가 가사 내용이나 제목을 집중해서 들어요. 시각과 청각은 공존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대신 음악을 들을 때 어떤 향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요. 그래서 향초를 피우기도 하고요. 머스크랑 우드 향을 좋아해요. 다른 건 민감하지 않은데 향에는 좀 예민해요. 어떤 공간이나 사람에 대한 향도 잘 기억하고.” 에르메스 ‘보야지’ 향수만 7년 가까이 써오고 있을 정도로 향에 대한 애착이 확실하다. 보디로션, 오일, 미스트, 헤어 퍼퓸을 몸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이유 역시 “제가 좋아하는 향이 나야 하거든요. 회사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내리면 제가 없어도 사람들이 다 알아요. ‘종현이 왔다 갔네?’(웃음)” 종현은 지금까지 작업해온 자신의 솔로 앨범을 어떤 향과 매칭했을까? “소품집 앨범은 우드 향, 미니 앨범은 빨간색을 품은 야릇한 향초를 피워두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종현과의 대화가 녹음된 파일을 종이에 타이핑하는 내내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사실 지난 2014년 겨울부터, 자정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그 시간 시계초침 소리처럼 들어온 음성이다. 내게 라디오는 습관과도 같다. 무의식적이고 반복된다. 버스 창가나 방 안에서 멍한 채로 하루의 끝을 그의 음성으로 인지해왔던 것 같다. 얼마 전 그가 DJ로 자리를 지켜온 MBC 라디오 <푸른밤 종현입니다>가 천일을 맞이했다. 그날 방송이 끝나갈 무렵 종현은 꾸역꾸역 참다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행복하고 따뜻했다는 청취자들의 짧은 사연 사이로 종현이 말을 잇지 못했다. “원래 기념일을 잘 챙기지 못해요. 그날도 ‘와, 시간 되게 빠르구나, 그래도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했네.’ 정도라고 담담하게 생각했는데 청취자분들이 보내주신 이벤트와 사연에서 감동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사람들의 일상과 저의 일상 사이에 어떤 우연한 교집합이 생기면서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운명적인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제가 운명을 좀 믿는 편이거든요.(웃음) 어떻게 보면 제가 보통 사람과 다른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의 사연을 통해 배우는 부분이 컸어요. 제가 경험하지 못한 인생을 가까이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라디오를 통해 얻은 가장 큰 변화였어요.” 종현에게 첫 번째 터닝포인트가 음악으로 진로를 정한 것, 두 번째가 자신의 첫 앨범을 만든 것이었다면 세 번째 인생의 전환점은 “라디오를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청취자의 사연을 바탕으로 직접 곡을 만든 결과물을 모은 앨범인 종현 소품집 <이야기 Op.1>가 그의 필모그래피에 남았으니 말이다. 대한민국 음반사에 있어 유일무이한 시도이지 않았을까?


2016년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점, 종현은 라스트 스퍼트를 올리고 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든 상태예요. 콘서트가 끝나면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제 몸과 정신 건강을 위해서 일을 좀 줄여야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1부터 10 가운데 요즘의 상태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 것 같냐고 묻자 대뜸 만화 <나루토>의 록리라는 캐릭터 이야기를 꺼낸다. “본인의 몸에 있는 차크라를 개방하면서 더 세지는 캐릭터거든요. 아마 몸에 8개의 문이 있었을 텐데 그걸 열면 열수록 더욱 강해져요. 그런데 항상 비기에는 독이 따르기 마련이죠. 록리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문을 몇 개 이상 개방하면 며칠간 움직일 수 없거나 혼수 상태에 빠져요. 지금 제가 딱 그런 상태에 도달해 있는 것 같은데요? (웃음)”



ⓒHarper's BAZAAR: 포토그래퍼 천영상, 에디터 김아름, 캐스팅 임경미, 스타일리스트 김윤미, 헤어 임정호, 메이크업 김주희, 캐스팅 임경미, 어시스턴트 김시애·정연주·이화

  1. 임헌일 “「‘왜’라는 말, 요즘 제가 가장 자주 듣는 말입니다. 이제 입이 막 트인 우리 아들이 저만 보면 하는 말이거든요. ‘엄마 왜?’ 며칠 전에는 기린 그림을 보면서 ‘엄마, 뭐야?’ 하고 묻길래 기린이라고 알려줬더니 왜 기린이냐고 서른 번 넘게 물어봐서 매번 다른 대답 지어내느라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종현 “이럴 때 ― 왜라는 말버릇이 붙은 친구들과 함께했을 때 ― 자아성찰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임헌일 “저도 사실 오늘 이 주제 딱 듣고 요게 생각이 났어요. 이제 막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들.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의 아이들 있잖아요, 모든 것에 ‘왜’를 다는 친구들 있잖아요.”
    적재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그런 질문들이 당연한데, 뭔가 그냥 저건 저거대로 ― 예를 들어 ‘기린은 그냥 기린이니까’ 이렇게 하고 ― 넘어가는 거지 아직 해답을 찾지는 못한 거잖아요.”
    종현 “그렇죠. 우리가 사실 기린이라는 이름 자체가 왜 지어졌고, 그 이름이 왜 기린이고, 언제 처음 기린이 나타났고(웃음), 누가 발견했고, 이런 걸 모르게 되는 거죠. 백과사전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저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궁금증이 되게 많아서 백과사전을 진짜 많이 보고, 지금도 휴대폰으로 검색 진짜 많이 하고 어플 중에 백과 어플이 되게 많아요(웃음). 그런 거 검색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종현 “오늘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데, 별의별 얘기를 다 했어요(웃음). 이사부터 적금, 사랑, 뭐 있었나요? 친구와의 부딪침.”
    임헌일 “수건 이야기도 있었고요(웃음).”
    종현 “기린은 왜 기린인가, 이런 이야기.”
    임헌일 “그러니까요(웃음).”
    종현 “지금 많은 분들이 기린 검색하고 계세요. 기린이 왜 기린인지, 이 말이 나오면서 다들 궁금해지십니다.”
    임헌일 “길어서 기린인가?”
    종현 “기린? 기린은 길어서 기린인가!”
    임헌일 “모르겠네요.”
    종현 “검색을 해볼 걸 그랬어요. 궁금해 죽겠어요. 빨리 두 분 보내드리고 기린 검색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웃음).”
    2016년 11월 7일 푸른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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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en Youth

종현의 머릿속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떠다닌다. 금수와 짐승의 차이, 존재의 경계, 예술이란 단어의 사회적 의미…. 새롭게 발매될 솔로 앨범은 그의 몽상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남들이 날 이해 못하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받아들이겠지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하고 다 알면서 저지르는 거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쓸데없고 혹은 저렇게까지 깊은 의미를 둬야 하나 싶은 것들,

나조차 이해 못하는 일들, 난 그런 게 너무 좋아요.”


종현


방송에서 보던 모습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요. 무대에서는 굉장히 에너제틱한데 실제로는 목소리도 작고 말투도 느린 편이에요. 

맞아요. TV에 비치는 이미지와 일상생활에서의 모습이 굉장히 달라요. 카메라 울렁증이 있어서요. (데뷔한 지 9년차 가수인데도?) 다들 안 믿지만 여전히 그래요. 무대 카메라는 괜찮은데 리얼리티나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면 바짝 긴장해요. 그래서인지 TV에서 훨씬 어리게 느껴진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만나면 전혀 그렇지 않죠?


TV에서 약간 들떠 있는 느낌이었다면 실제로는 내성적이고 차분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어요. 촬영 준비하면서나 짬이 날 때마다 말 없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기도 했고요. 

유튜브로 영상 찾아보는 거예요. 스케줄이 있거나 졸릴 때마다 잠 쫓으려고 봐요. 아침 일찍 움직여야 하는 경우엔 거의 못 자거든요. 고등학교를 자퇴하면서 등교시간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니까 습관적으로 늦게 자기 시작했어요. 사실 재작년까지는 하루에 두 시간 정도밖에 안 잤어요. 그래도 괜찮았는데 작년부터는 만성피로가 느껴져서…. 원래 좀 예민하기도 한데 앨범 나오기 직전이라 요즘엔 더 그런 것 같아요. 원래 마무리하기 전까지는 굉장히 치열하게 파고드는 성격이에요. 어디를 고쳐야 할지 하루 종일 고민해요.


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로 고등학교 자퇴한 것을 꼽았어요.[각주:1] 어떤 이유인가요?

사춘기를 벗어나게 해준 선택이었어요. 이제 와서 안 사실인데 그때 엄마의 동의를 구한 게 아니라 통보를 한 격이더라고요. 물론 이런 계획을 짜놨으니 허락해달라고 말했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무조건 “자퇴할 거야”로 들렸을 거예요. 그때 엄마가 내 선택을 존중해줬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하루아침에 환경이 변했고 엄마의 믿음을 느낀 만큼 책임감도 강해졌으니까요. 누가 내 머리와 발끝을 잡고 죽 늘어트린 것처럼 정신이 죽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튼살이나 흉터가 남았을 수도 있지만 그건 영광의 상처겠죠.


한 웹 매거진에서 샤이니 멤버 각각의 다섯 가지 매력을 뽑으면서 ‘섬세한 아티스트’라고 칭했어요.[각주:2] 동의하나요?

어렸을 때부터 보통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을 걸어오지 않았으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생각을 하게 됐어요. 평범하지 않은 편에 속하는 건 맞아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아티스틱하다는 게 예쁘게 포장돼 있는 말이라고 느껴요. ‘특이하다’ ‘이해할 수 없다’ ‘진보적이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라는 걸 ‘아티스틱하다’라고 좋게 표현하잖아요. 진짜 의미와 사회적 의미가 좀 다르다고 할까. 예술도 그래요. 무언가를 자기 언어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게 예술 아닌가요? 마냥 아름답고 무거운 게 아닌데 사회적 의미 속엔 환상성이 포함돼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맥락으로 아이돌은 아티스트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이 거창한 게 아니니까요.


일반적인 아이돌의 모습이 아니긴 해요. 일단 음악적인 면만 봐도 앨범을 전곡 자작곡으로 채우는가 하면 이하이, 김예림, 아이유를 비롯한 다른 기획사 뮤지션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서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원래 작곡가가 꿈이었어요. 수월하게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으로 가수를 선택한 거죠. 계획적이었던 건 아니고 타이밍이 잘 맞아서 그리 된 거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오히려 행운이었어요. 아이돌이 굉장히 유리한 위치에 있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하거든요. 뮤지션은 컨셉추얼해야 하는데 아이돌은 상상력을 자극하기 좋잖아요. 또 고정관념 때문에 아이돌이 음악 만든다고 하면 ‘기대 이상’이라고 하고요.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데. 아이돌이 가진 태생적 단점이자 장점이겠죠.


팬과의 소통에 있어서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고맙다고 하지 않더군요.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는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서로에 대해 기대도 하고, 실망도 하고, 감동도 하고, 화도 내고…. 그런 감정들을 거듭하는 사이 사람 대 사람, 인간적인 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각주:3] 이 말을 들으면서 현실적이라고 느꼈어요.

“아이돌이 그런 얘기 해도 돼요?”라는 말 많이 들어요. 특히 이렇게 인터뷰하면서요.(웃음) 그런데 팬들 그리고 나를 잘 아는 사람들한테는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물론 마음 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반대로 나를 숨기거나 가짜로 보여주는 것도 상처가 될 수 있잖아요? 난 진짜를 보여주는 걸 택하지 속이면서까지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각주:4] 그래서 항상 팬들에게 “난 그냥 TV에 나오는 사람일 뿐이에요. 우린 계속 좋은 친구죠.”라고 해요. 팬들은 무슨 의미인지 잘 알 거예요.


생각하는 바를 분명히 말하는 타입이군요. 작년 발매한 솔로 미니앨범 <BASE>에서도 SM의 기획력에 함몰되지 않은 뚜렷한 자의식이 인상적이었어요.

솔로 앨범은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내 음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개인적인 욕심으로 하는 작업과 대중에게 어떤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다는 의도의 작업. 둘 다 의미가 있지만 솔로에서는 전자를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게 맞지, 샤이니의 또 다른 세계관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BASE>를 기획하면서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으면 유닛 혹은 콜라보레이션 앨범을 만들라고 제안했어요. 작년에 발매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솔로 앨범이 나올 거란 확신이 있었거든요. 중요한 건 시기가 아니라 어떤 생각을 담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에 조급하게 밀어붙이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이틀 후에 “그럼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라는 연락이 왔어요. SM 하면 보통 억압이 심하거나 교류가 없다거나 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꼭 그렇지도 않아요. 회사 내의 눈높이가 높다 보니 그 벽을 넘기가 힘들 수는 있어요. 그래도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잘하면 돼요. 그럼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요.


5월 중 발매되는 새로운 정규 앨범에서 역시 담아두었던 걸 마음껏 표현했나요?

섹슈얼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타이틀 곡 외에도 전체적으로 섹시한 뉘앙스를 가지고 가되 무턱대고 자극적인 게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런 앨범이요. 그런데 작업자의 입장에서 “이런 앨범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얘기한 상태로 작업하는 것과 완성 후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만들었습니다.”라고 밝히는 건 차이가 있거든요. 이미 ‘섹슈얼’이란 코드를 알려주고 진행하다 보니까 릴랙스하라고, 조금 참아보라고 ‘태클’이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다들 음란마귀가 씌었는지 별거 아닌 가사도 무조건 야하게 해석하고….(웃음) 그게 재미있기도 했어요. 사전고지의 유무가 음악을 해석하는 데 이렇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구나, 싶어서. 결과적으로는 좋아하는 걸 최대한 많이 한 상태라 만족해요. 물론 앨범이 잘되면 즐겁고 감사한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죠.


상상력을 자극하는 섹슈얼한 뉘앙스라니, 자연히 맥스웰이나 디앤젤로가 떠오르네요.

물론 팔세토 스타일의 가성으로 노래하는 네오소울 장르도 있죠. 뿐만 아니라 PBR&B, 누재즈 같은 다양한 장르가 혼합돼 있어요. 한동안 힙합이 워낙 유행이었으니까 힙합 비트를 많이 들을 수밖에 없었죠. 퓨처 베이스라든지 트랩이라든지 새롭게 관심 가는 비트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었어요. 전체적으로 한창 ‘썸’ 타거나 ‘Falling in Love’의 스토리라 이별 노래는 물론 발라드 곡은 한 곡도 없습니다.


표현력이 기대되는 컨셉트예요. <BASE>에서 곡마다 캐릭터를 연기하는 듯 목소리를 바꿔서 불렀던 것처럼요. 때문에 연극적인 앨범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죠.[각주:5]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수월하고 정확하게 감정을 표현하려면 목소리 톤이나 두께보다도 호흡을 사용해야 해요. 울거나 웃거나 놀랐을 때, 모두 호흡이 다르기 때문에 그 점을 적절하게 이용하면 소리만으로도 표정을 내비칠 수 있어요. 또 작사할 때부터 캐릭터의 성격을 정확하게 축조해놓고 시작하는 편이에요. 물론 나를 대입시키면서부터 뻗어가니까 내 성격이 많이 배어 있죠. 가장 중요한 건 노래 속 화자와 청자의 상황인 것 같아요. 그런 전체적인 틀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가사는 물론 멜로디도 잘 안 떠올라요.


이번 앨범의 화자는 어떤 인물이에요?

되게 능글맞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는 않아요. 농담도 잘하고 닭살 돋는 말도 서슴없이 던지는 타입이에요. 여자들이 겉으로 오글거린다고 핀잔 주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런 남자.


작사를 포함해서 평소에 글 쓰는 걸 무척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작가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작은 영감 하나하나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고.

중학교 때 꿈이 소설가, 국어선생님이었어요. 그런데 첫 번째 중간고사 보고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아, 난 선생님은 못 되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밴드부 들어가서 음악 만들고 가사 쓰는 걸로 진로변경했어요. 사주를 봐도 누군가에게 생각을 전달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주 보시는 분이 “딱 선생님 사주인데 공부를 전혀 안 한 거 보니까 사기꾼이네!”라고 하셨어요.(웃음) 예술가로서나 이성적으로나 언변이나 글재주가 좋은 사람 굉장히 매력적이잖아요. 서른이 넘어가면 시가 됐든 소설이 됐든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싶어요.


소설 <산하엽: 흘러간, 놓아준 것들>이 작은 출발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연애소설이나 사랑영화를 전혀 안 본다면서 왜 연애소설을 썼어요?

그게 삶의 아이러니에요. 작사할 때와 마찬가지로 책을 쓸 때도 독자가 누구일지 생각했어요. 대부분 여성이 읽을 텐데 나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가장 동요할까? 그게 사랑이야기였던 거죠. 그런데 알콩달콩한 연애는 도저히 두 페이지 이상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별과 이별 후의 이야기를 썼어요. 쓰는 내내 일기나 가사 쓰는 것과는 또 다르게 나를 되돌아볼 수 있어서 굉장히 행복했어요. 네 명의 인물이 나오잖아요. 남자주인공, 여자주인공, 가수, 그리고 남자주인공의 후배. 그 넷 모두가 내 모습들이거든요. 내 면면이 부여된 캐릭터와의 만남, 그 작업도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보통은 남자주인공이 나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남자는 내가 음악을 할 때, 여자는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의 태도예요. 가수는 남들이 보는 나, 그리고 후배는 내가 사랑할 때의 모습이에요.


그 후배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말 없이 위로를 건네는 역할이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짝사랑할 때예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몇 사람 사랑하지 못했을 만큼 한번 사랑하게 되면 맹목적으로 감정을 이어가는 편이에요. 사랑하는 순간까지도 힘겹고 오래 걸리고요.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예전엔 가정을 꾸린다는 것에 대한 추상적인 계획이 있었는데 지금은 결혼은 물론 연애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지금 내 삶의 방식에 만족하고 연애 외의 다른 계획들을 세우는 게 즐거워서 거기에 빠져 있어요.


사실 ‘산하엽’이란 단어를 찾아낸 게 놀라웠어요. 물에 젖으면 투명해지는 희귀한 꽃이라니, 흔히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니까요. 

참 예쁜 꽃이죠. 그런 단어를 찾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마음 가는 단어가 있으면 검색해서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고 사회적 의미가 어떤지 생각해봐요. 단어를 가지고 더하기 빼기를 많이 한다고 할까. 문장이나 단어들이 머릿속에 많이 남아 있는 편이에요.


요즘 자꾸 생각나는 문장이나 단어가 있다면요?

누군가가 저한테 보낸 문자인데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요. “우리 봄이 오기 전에 꼭 만나요.” 그 문장이 너무 예쁘기도 했고 나한테 존댓말을 할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얘기한 것도 재미있었어요. 따뜻한 느낌도 들고 왜 3월, 4월 이런 뚜렷한 날짜가 아니라 추상적인 기한을 정해서 얘기를 했을까. 왠지 뭉클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것 때문에 글도 쓰고 ‘우린 봄이 오기 전에’라는 노래도 만들었어요. 지금 외국에 나가 있는 친한 형인데 결국 만나기 전에 봄이 지나가버렸네요. 그래도 ‘우린 봄이 오기 전에’를 발매하기 전까지는 계속 남아 있을 것 같아요.


가사나 소설 모두 그렇지만 실제로도 낭만적인 구석이 있는 사람이네요. 스스로도 로맨티스트라고 생각하나요?

그렇기도 하고 몽상가이기도 해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는 사람이 몽상가잖아요. 몽상가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지만 그걸 이루려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거든요. 재미있는 건 결국 그 꿈이 현실화되면 이제 더 이상 몽상가가 아니게 되죠. 그래도 계속 또 다른 꿈을 꿔서 몽상가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동시에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인 것도 맞아요.[각주:6] 무슨 뜻이냐면 남들이 날 이해 못하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받아들이겠지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하고 다 알면서 저지르는 거죠. 반항심일 수도 있고 의외성을 공략하려고 노력하는 걸 수도 있어요. 그냥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쓸데없고 혹은 저렇게까지 깊은 의미를 둬야 하나 싶은 것들, 나조차 이해 못하는 일들, 난 그런 게 너무 좋아요.


이를테면 또 어떤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나요? 존재의 진정한 의미?

예를 들면 산타클로스 같은 거예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모두가 알지만 산타클로스가 있다는 믿음으로 착한 일을 하게 되면, 그러니까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면 그건 실존의 유무를 떠나서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존재한다’와 ‘존재하지 않는다’의 경계가 무너져버리게 되는 거죠.[각주:7]


‘아티스틱’한 생각이네요.

그렇죠. 예술가는 세상에서 가장 실용적이지 않은 것들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그게 금수와 인간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해요. 아, 요즘에 ‘금수’라는 단어에 꽂혀 있어요. 짐승보다는 고급스러운 뉘앙스를 띠면서 욕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날것의 느낌은 살아 있으니까요. ‘짐승과 인간의 차이점’이라고 말하면 내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요. 이런 것도 혼자 생각해요. 짐승과 금수의 차이는 뭔지, 무게감이 어떻게 다른지. 이런 얘기를 하면 보통은 “그래. 철학적이긴 해. 인간은 그런 고민을 해야 하고 고찰을 해야 해. 하지만 왜 굳이…?” 혹은 “그래서, <주토피아>는 봤어?”라고 하지만요.(웃음)


ⓒHarper's BAZAAR: 에디터 권민지, 포토 최문혁, 헤어 임정호, 메이크업 김주희, 어시스턴트 이병호

  1. ※ 정확히는 일반 고등학교 자퇴 후 음악 학교에 진학한 것.
    “음악학교에 간 것이 제 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했거든요. 요즘 곡 작업을 하면서 두 번째 터닝포인트라는 걸 느껴요. SM에 들어올 때보다 훨씬 강렬해요.” 2010년 10월 GQ [본문으로]
  2. 종현, 섬세한 아티스트
    포지션: 메인보컬, 싱어송라이터, 반항아
    처음부터 종현은 눈에 띄는 멤버였다. 노래의 도입부에는 어김없이 그가 등장했고, 호흡을 많이 섞는 독특한 보컬은 샤이니의 특징으로 기억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종현은 목소리로 중심을 잡던 시기를 지나, 곡과 가사를 통해 팀의 색깔을 스스로 다듬어가기 시작했다. [SHINee The 3rd Album Chapter 1. Dream Girl-The Misconceptions Of You]에서는 수록곡의 제목을 모아 써내려간 가사로 컴백의 기세를 그려냈으며(‘Spoiler’), 미니 5집 [Everybody]에서는 “차가운 눈빛에 패인 내 심장 중심 깊숙이 베인 채 이 상처를 못 고치면 죽어버릴지 당장 미쳐버릴지 어찌 될지 모르겠어” 등의 독특한 가사로 선택받지 못한 사랑의 애달픔을 묘사했다(‘상사병’). 그리고 마침내 정규 4집 [Odd]에서는 첫 번째 트랙 ‘Odd Eye’의 작사와 작곡, 편곡을 모두 해내며 자신과 팀의 성장을 증명했다. 이렇게 뚜렷한 아티스트의 인장이라면,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2015년 5월 28일 ize [본문으로]
  3. “저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성장해 오는 동안, 저희와 팬분들이 서로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는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서로에 대해 기대도 하고, 실망도 하고, 감동도 하고, 화도 내고……. 인간적인 부분에서 그런 감정들을 거듭하는 사이, 가족 같은 관계가 된 건 아닐까 해요. 사람 대 사람, 인간적인 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 3월 SeeK vol.007 [본문으로]
  4. “제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집에서도 그렇게 가르침을 받았거든요. 너무 솔직한 게 가끔은 저 자신이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저는 솔직하고 싶어요.” 2009년 1월 6일 10asia [본문으로]
  5. 그리고 그런 자의식은, 열창이 아니어도 목소리의 컨트롤과 연극적 표현력으로, 또한 우아한 팝을 주조해낼 수 있는 퀄리티로 얼마든지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빛을 발한다. 2015년 1월 22일 Idology [본문으로]
  6. 고영배 “종현 씨는 로맨티시스트가 아니면 그런 가사를 쓸 수가 없어요. 로맨틱(한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내가 아는 로맨티시스트 중에 가장 가장 시니컬(한 부분)을 같이 가지고 있어. 로맨틱 대비 시니컬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커피소년 “그래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고영배 “그게 그 사람의 매력인 것 같아요.”
    나인 “약간 복잡한 남자예요. 맞아요.”
    고영배 “복잡해. 맞아맞아”
    커피소년 “맞아맞아.”
    고영배 “그런 데에 여자들이 미치는 거지.” 2016년 1월 26일 푸른밤 [본문으로]
  7. “「쫑디는 산타 몇 살까지 믿었어요? 저는 믿은 적이 없어요.」라고 보내주셨습니다. 글쎄요, 제 기억 속에서 산타를 믿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저도? 기억 속에서는. 왜냐면 어린이집에 일곱 살 때 몇 개월 다녔거든요. 그때도 이미 내가 산타가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보다 어렸을 때 이미 알고 있었겠죠? 제 머릿속에는 산타를 믿었던 기억은 없네요. 그런데 저는 커서 생각을 한 건데 산타라는 건요, 내가 믿는 순간 존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형체로서 다가오지는 않지만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잖아요. '착하게 살면 선물을 받는다' 이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치인 거니까 내게 형체로 다가오지는 않아도 내 심적인 부분이나 인생에 있어서 ― 가치관이나 이런 것에 ― 도움을 분명히 줄 테니까, 믿으면 산타는 있는 거죠. 흰 수염 기르고 빨간색 모자 쓰고 그 산타는 사실 음료 회사에서 만들어낸 이미지인 거고 우리가 생각하는 산타라는 건, 어떻게 보면 기댈 곳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아요.” 2014년 12월 23일 푸른밤 [본문으로]



23인의 디자이너와 그들의 뮤즈 
하상백&샤이니

한순간에 스튜디오가 시끌벅적해지더니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로 활기가 넘쳐 흘렀다. 다섯 명의 천진난만한 소년들은 디자이너 하상백을 만나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그동안 궁금했던 질문을 쏟아냈고, 끊임없는 질문에 결국 하상백은 웃음을 터트렸다. 허물없이 담소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한동네에 사는 친한 형 동생 사이처럼 너무나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만남은 '샤이니'란 이름이 생기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왔기 때문. "처음엔 이렇게 타이트한 바지를 입어도 될까. 이렇게 화려한 컬러를 입어도 될까. 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지금은 평범하고 헐렁한 옷을 입으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져요. 이제 저희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은 '슈퍼 스키니 진'과 '컬러풀한 티셔츠'랍니다." 단정한 교복 차림으로 꾸벅 인사를 하던 철부지 소년들에게 하상백은 개성 넘치는 지금의 샤이니 스타일을 하나씩 가르쳐주었고, 샤이니는 하상백이 가르쳐주는 스타일의 모든 것이 새로웠지만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BAZAAR: 에디터 이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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